저는 영천시 파크골프협회 회원입니다 파크골프 국가체육지도자입니다. 2022년 2월 10일재미나고 내용이 알차고 실감나는 드디어 [앞서야 산다]라는 책을 직접 출간하였다. 필자는 온갖 정성을 들여 기나긴 세월의 성공비담을 재미있게 저술하여 영풍문고, 을지문고, 교보문고 등 전국의 유명서점에서 팔 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앞서아 산다] 저자 최송만을 검색하면 즉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머리말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너무나 많은 성공담과 에피소드들을 엮어 재미있게 내용을 만들어 가고져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풍파속에서 남들보다 앞장을 서기 위해선 [앞서야 산다]라는 개념으로, 철저하게 ‘올바른 정신’과 ‘튼튼한 건강’으로 똘똘 뭉쳐,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온갖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었다.
특히 그룹의 성장과정에서 그룹의 회장인 [오너]와 제일 먼저 들어온 [본인]과의 삐걱거리는 미묘한 감정을 스릴 있게 묘사를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우리나라의 부응에 발맞추어 추진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시절이었다.]
[농사를 지으라]는 어머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1965년도에 인하공대 화공과에 7.5:1의 높은 경쟁률에 어렵게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합격을 해도 어머님이 학비를 대줄 의향이 없는 것 같아서, 무조건 부딪쳐 보기로 하여, 그 결과 힘들게 힘들게 입주가정교사를 얻어, 4년 동안 학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입주가정교사를 얻게되는 시점부터 어머님은 [농사를 지으라]는 말씀이 쏙 들어가버렸다.
취직이 어려운 시절에 화공과 4학년 말 11월에 성적이 제일 우수했던 본인은 제일 먼저 기업에 스카우트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산업용지 만드는 직원 400여 명 되는 대한펄프공업(주) 의정부공장에 입사를 하였다.
이미 먼저 입사를 한 서울대, 연세대, 고대생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입사 초년생이라 특별한 방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들은 서울이 집이라 오후 6시에 출발하는 서울행 통근버스를 타고 칼같이 퇴근하는 것을 보고, 본인은 기숙사에 머물면서 공장에서 새벽까지 장시간 현장에서 일을 하였다. 1년 7개월 만에 유일하게 나 홀로 특진으로 진급을 하였더니,
상기 3개 대학 출신의 직원들이 아니꼽다 하여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어찌 되었건,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나는 이기고 만 것이었다.
이것이 사회에 처음 나온 초년생의 [앞서야 산다]의 훌륭한 결실을 가져왔다
이후 다른 제지회사의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안으로, 4개의 회사로 스카웃되면서, 본인의 발전에 급성장을 하며 많은 경험들을 얻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마음이 맞는 서울상대 출신을 만나, 처음 회사를 창업하여 처음 인수한 불실된 온양공장에 대하여, 이분은 경영을 맡고, 본인은 기술을 맡았다.
건설본부장이 되어 온양공장 건설 중 건축업자가 중도에 포기한 것을 본인이 직영을 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공장을 건설하였고, 최단기 내에 생산을 개시하여, 큰 흑자를 이끌어냄으로써 조기에 첫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달성하였다.
온양공장의 급성장한 알찬 내용의 기업 도약을 계기로 하여, 계속 새로운 불실기업을 연속으로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기술을 맡고있는 본인은 불실된 기업들을 인수할때마다 차례차례로 즉시 불실공장으로 내려가서 불실문제를 조기에 제거하고, 조속히 흑자를 도출해냄으로써, 모두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내어 사세를 더욱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회사가 열 군데 이상 많아지고 커지다 보니, 본사에 종합기획조정실을 만들어 본인이 실장이 되어 많은 회사와 겸직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본인은 많은 계열회사의 공장장, 대표이사, 법정관리인과 그룹의 종합기획조정실장을 겸직을 하면서, 모두 경영정상화로 인하여 급기야 재계 그룹 25위 순위까지 올라가는 대성공을 이끌어내는데 1등공신의 역할을 다 하였다.
수많은 성공사례담을 창출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앞서야 산다』라는 재미있고 스릴이 있는 책 발간을 한 동기가 되었다.
오너인 회장과의 무수한 갈등으로, 첨예하고 숨막히는 스릴과 격동 속에서, 회사들을 급성장시킨 과정이 적나라하게 역동적으로 실려있다.
현직에서 물러나고 어떻게 할까 생각 끝에 ‘운동과 건강’에 관한 국가자격증을 10개 이상 따기로 목표를 세웠다.
2021년 현재 보디빌딩, 파크골프 등 5개의 국가체육지도자 자격을 획득하였다.
2022년에는 추가로 3개 정도의 국가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2021년 1월에는 7개월간 열심히 공부한 결과, 그 어려운 헬스클럽 보디빌딩 1급 국가체육지도자 필기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하였다.
그런데, ‘운동과 건강’ 분야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과목은 ‘건강운동관리사’ 국가자격증이다. 이를 따기 위해서는 체육분야의 전문학사 이상의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사이버대학에 체육전문과목으로 편입하여, 현재 ‘스포츠건강관리학’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2022년도에 스포츠건강관리학을 전공한 전문학사로 졸업을 하면, 전문스포츠지도사, 건강운동관리사에 도전을 할 것이다.
본인의 생활신조는 죽을 때까지 무엇이든 [의미 있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슬로의 5대욕구 중 마지막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달성하는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260편 이상의 ‘건강과 삶의 지혜’에 관한 주옥같은 글들이 보름에 한 번씩 쓰여지고 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csm01126
필자가 지은 제목: [앞서야 산다] 저자: 최송만 출판사: 지식과 감성 페이지: 458페이지 판매처: 전국대형유명서점 및 인터넷: 11번가, 지마켓, 옥션, 인터파크 등 판매개시일; 2022년 2월 21일부터
판매하자마자 너무 재미있고, 통쾌하고, 알차며 내용이 풍부하여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읽는 독자들은 살아있는 교훈이 있다고 하면서 2권,3권,5권, 심지어는 7권까지 한꺼번에 구입을 하여 주위와 자식들한테까지도 선물한다며, 구입하고 있습니다.
본문 일부 소개 1965년 입주가정교사는 하늘의 별따기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신문사 안에서 그나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편집장이었다. 사전에 예약도 없이 편집장실을 노크하였다. 요즈음은 비서가 있겠지만 그땐 그렇지가 않았다. 무조건 밀고 들어가 성광고등학교 교복 차림으로, 정자세로 똑바로 서서 창이 있는 학교 모자에 거수경례를 하면서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갑자기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들어온 낯선 고등학생을 보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깜짝 놀라는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교복을 입었으니 분명히 고등학생으로 알고 위협하러 온 사람은 아닐 것으로 두려운 모습은 아니었다. 편집장이 바쁘니깐 나가달라는 말이 미처 나오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하기로 순간적으로 작정을 하고, 여기 온 급박한 사정을 일사천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대구시의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번 인하공대 화공과에 7.5: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제일 인기 있는 화공과에 합격한 사람입니다. 12시간이나 걸리는 초행길을 기차에 서서 이곳 인천까지 어렵게 왔습니다만, 여기 인천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상태라 어디 도움을 청할 때가 없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구차해서 대학교 등록금은 물론이고 4년간 다닐 등록금도 마련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으로 학교를 포기해야 할 비참한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미리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니고, 여기 신문사의 편집국장님은 아주 큰일을 하시는 분이므로, 저에게 입주가정교사 자리를 한번 알아봐주십사 하고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급한 나머지 불쑥 찾아뵈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공부하고자 경상도에서 이곳 생면부지의 인천까지 올라온 이 불쌍한 학생을 좀 도와주시면 평생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일사천리로 말씀을 올렸다.
벌서 두 군데 신문사는 돌았고, 이번에는 세 번째 신문사 편집실에서 전과 같이 리바이벌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편집장이 매우 쾌활하고 호탕하였다. “이보게 학생. 입주가정교사가 그리 흔한가?. 아주 부잣집이라야 그 집에서 먹고 자면서, 그 집 애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거야.“ 라고 하면서, “학생 참말로 당돌하면서도 그 용기와 패기가 대단하네 그려,” 하면서 “ 즉각 내가 한번 알아봐주겠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디로 전화를 걸어 한참을 이야기를 한 후에, 나보고 주소를 써주면서 여기를 찾아가보라고 하셨다, 추천한 분은 철제드럼통을 만드는 큰 공장의 공장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어물어 그 공장을 찾아가 경비실을 통해 공장장을 면회를 청하였다. 철제드럼통은 부피가 커서 그런지 공장이 아주 넓은 부지에 서있었다. 다행히 그 공장은 인하공대 정문 앞 길 건너 맞은편에 있었다. 드디어 공장장이 나왔는데, 대단히 온화한 얼굴인상으로 말씀도 부드러웠다. 부모님이 사는 곳이 어디며, 가족은 어떻게 되느냐고 몇 가지만 간단히 물어보시고 어렵게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며 우리 집 애를 잘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여 입주가정교사를 구하게 되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무조건 구하였더니 그 소원이 이루어질줄이야 하고 짐짓 나 스스로 놀랐다. 즉시 편집장님에게 감사를 드리고 인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앞선 돌파력과 재치로 그 어려운 입주가정교사 자리를 [앞서야 산다]의 개념으로 성공적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저의 블로그에 그 동안 성실하게 주옥 같은 260편 이상의 글들을 써 올려 왔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참작하여 정말로 재미있는 책을 읽어보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필자 010-5261-2204 로 연락바랍나다. |